호주가 척박한 불모지가 아니라 붐비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는 소식이 곧 런던에 전해졌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이유는 형량 때문에 호주로 송환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주로 보내진 수감자들은 미국으로 간 순례자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사회를 이루었다. 즉, 제국이 성장함에 따라 먼 곳에 있는 정부가 감독과 통제의 균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호주의 식민지화는 미국의 영국 식민지가 독립을 선언한 직후에 시작되었다. 북미에서는 종교적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순례자 집단으로 시작한 한 공동체가 급속히 성장하여 대서양 건너편 먼 곳에 있는 정부가 부과하는 법률과 세금에 지쳐 버렸다. 결국 18세기 후반에 그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많은 영국 출신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 일어난 후,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미국이 미래에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었으므로, 영국 정부의 많은 사람들은 독립을 허용함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회복 가능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랐다. 영국은 북미 식민지의 상실로 인해 고통스러운 교훈을 얻었다. 그들이 미국에 거부했던 자치권은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다른 영토에는 허용되었던 것이다. 이는 교훈이었고, 토착 주민에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호주에서는 농부와 원주민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다. 이는 미국 정부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과 비슷한 갈등이었다. 호주에서 영국은 식민지 주민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면서도 감독권을 유지했다. 그들은 이런 감독을 이용하여 뉴사우스웨일즈주와 서부호주에 원주민 보호령을 설립했다.
현재 한국 번역가 협회 회원으로 번역하는 사이사이 책을 출간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며 항상 좋은 책을 펴 내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은 독자 여러분의 관심으로 그 꿈을 이루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