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뤼퍼는 전쟁 후 아바스가 권력을 되찾기를 바랐지만 프뤼퍼의 노력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몇 달 만에 독일의 운명은 급격히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예일이, 로렌스가 중동 전문가라고 예감했던 것은 옳았다. 그는 마침내 1918년 3월 로렌스를 만났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렌스는 예일에게 할 말이 많았다. 아랍인들은 영국이나 프랑스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와 그의 부하들은 아랍인들이 무력으로 빼앗은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로렌스는 시오니스트 운동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결코 평화롭지 않을 것이며, 무력으로 건설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대화 직후, 로렌스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게 되었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로렌스는 결국 제국주의 열강에 공식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아랍인들이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 마침내 1918년 6월, 그는 자신이 바라던 답을 얻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인들이 스스로 해방한 땅의 독립을 인정할 것이라는 답이었다. 이제 로렌스는 아랍 군대를 이끌고 다마스쿠스로 향하고 싶었고, 부하들에게 승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15개월간의 전쟁은 다마스쿠스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1918년 9월, 유럽과 중동의 상황은 갑자기 최후를 맞이했다. 미국은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프랑스에 도착했고, 9월 19일에는 대영 제국의 공세가 시작되어 터키군을 퇴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때 TE 로렌스는 마지막 출격을 앞두고 있었지만, 상황은 암울하게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 번역가 협회 회원으로 번역하는 사이사이 책을 출간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며 항상 좋은 책을 펴 내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은 독자 여러분의 관심으로 그 꿈을 이루리라 확신한다.